얼마 전 제대로 지름신에 걸려들어 HD TV를 구입한 친구가 불평한다. “요즘 탤런트들은 관리도 안 하나? 땀구멍하고 뾰루지가 다 보이잖아.” 그 선명한 해상도 덕분에 피부 클리닉 전화통에 불이 나고 있겠다. 그런데 내 눈에는 전혀 다른 것이 거슬려 견딜 수가 없다. 꽃미남 스타의 턱밑 상처도, 섹시계의 조연, 망사 스타킹도 아니다. 화면 위에서 둥둥 겉돌고 있는 ‘글자’들 때문이다. 나의 직업은 좀 모호하다. 대체로는 눈으로 볼 수 있고,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에 대해 칭찬과 야유를 퍼붓는 일로 먹고산다. 10년 전부터 이어오고 있는 만화 비평가의 업이 바닥에 깔려 있고, 그 위에 여러 잡종의 장르가 포개지고 있다. 최근에는 TV 개그 프로그램과 버라이어티 쇼의 비평객 일이 많이 덧붙여지고 있다. 바로 그 지점 때문인지, 내 망막에 서로 이질적인 영상들이 겹쳐진다. 바로 만화와 TV다.
요즘 TV가 만화를 닮아간다는 지적은 여기저기에서 제기되고 있다. <타짜> <식객> 같은 만화 원작의 드라마가 꾸준히 이어지고, 시트콤과 버라이어티 쇼의 캐릭터들이 만화화된다는 사실에 대해 입 아프게 덧붙이고 싶지는 않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요즘의 TV가 시각 디자인적으로 출판 만화를 적지 않게 흉내 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나 최근 시작된 MBC 시트콤 <그분이 오신다>를 보면 정통적인 드라마 세계에서는 용납하기 어려운 표현들이 눈에 띈다. 주인공의 눈물이 마치 만화의 한 장면처럼 반짝이며 공기 중에 흩뿌려지고, 웹툰 <정글 고등학교>의 주인공인 불사조 캐릭터가 만화 그대로 의미 없이 등장한다. 정상적인 자연색 화면의 표현과는 다르게 원색이 강조된 만화풍의 색감 역시 이런 장면을 만화화한다.
여기에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요소가 있다. 보통의 드라마라면 주인공의 감정이든, 그들이 벌여가는 사건이든 연기자가 행동과 대사를 통해 전달해야 한다. 말하자면 영상과 소리가 역할을 나누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제3의 요소인 ‘글자’가 강력한 비중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어느 시트콤은 한정판 게임을 사기 위해 줄 서 있는 캐릭터를 설명하며 “앞에서 기다리던 사람이 사라지길 기대하는 1인” 같은 인터넷 댓글 스타일의 글을 화면에 그대로 내보낸다. <무한도전> <무릎팍 도사> 같은 코미디 버라이어티 쇼의 경우에는 이러한 현상이 더욱 노골적이다. 단순한 화면 전환이나 게임 설명을 위한 텍스트뿐만 아니라 “형돈아 우리는 네가 더 부끄러” 같은 PD나 작가의 속말을 그대로 글자로 적어낸다. 이러한 표현은 만화를 통해 여러 화법과 시선이 겹쳐지는 효과에 이미 익숙해진 시청자들에게는 훌륭한 공감대를 만들어낸다. 조금 남용되는 감도 없지 않지만, 그 사용 자체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이런 텍스트를 단순히 글자라는 추상물로 여기고 아무렇게나 내던지는 점에 대해서는 불만이 마구 솟아오른다. 영상과 소리라는 고전적인 구성물 이외에 추가로 덧붙이는 글자라는 요소는 아무래도 이질적이고 도드라진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 글자에 대해서도 충분한 디자인적 고려가 선행되어 최소한 눈에 불편하지 않게, 나아가 그 요소로 인해 화면이 더욱 때깔 나도록 해야 하는 거 아닐까?
케이블 TV를 통해 외국의 리얼리티 쇼나 토크 쇼 등을 접할 기회가 많아졌다. 나는 그 내용에도 탄복하지만, 같은 장면이라도 매혹적이고 자연스러운 디자인으로 만들어내는 그 표현법에 더욱 감탄하고는 한다. 여러 쇼에서 오프닝 화면, 장면을 전환하는 페이지, 영상 중간 중간 색연필로 낙서하는 듯한 효과 등의 표현을 따라가다 보면 나는 정말로 디자인 잘 된 잡지나 출판 만화를 읽어가는 듯한 희열을 느낀다. 여기에 톡톡 쏘는 소리의 요소까지 덧붙여지니 이것이야말로 멀티미디어 디자인의 정점이 아닐까 싶다. TV가 만화를 닮아가는 것은 나로서는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아무 만화나 적당히 따라 하지 말고, 정말 좋은 만화의 훌륭한 디자인 기법을 따라 하길 바란다. 원색의 강렬함, 장면 내 여러 구성 요소들의 효과적인 배치, 자연스러운 타이포그래피로 적절히 배치된 텍스트 요소 같은 것 말이다.
요즘 TV가 만화를 닮아간다는 지적은 여기저기에서 제기되고 있다. <타짜> <식객> 같은 만화 원작의 드라마가 꾸준히 이어지고, 시트콤과 버라이어티 쇼의 캐릭터들이 만화화된다는 사실에 대해 입 아프게 덧붙이고 싶지는 않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요즘의 TV가 시각 디자인적으로 출판 만화를 적지 않게 흉내 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나 최근 시작된 MBC 시트콤 <그분이 오신다>를 보면 정통적인 드라마 세계에서는 용납하기 어려운 표현들이 눈에 띈다. 주인공의 눈물이 마치 만화의 한 장면처럼 반짝이며 공기 중에 흩뿌려지고, 웹툰 <정글 고등학교>의 주인공인 불사조 캐릭터가 만화 그대로 의미 없이 등장한다. 정상적인 자연색 화면의 표현과는 다르게 원색이 강조된 만화풍의 색감 역시 이런 장면을 만화화한다.
여기에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요소가 있다. 보통의 드라마라면 주인공의 감정이든, 그들이 벌여가는 사건이든 연기자가 행동과 대사를 통해 전달해야 한다. 말하자면 영상과 소리가 역할을 나누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제3의 요소인 ‘글자’가 강력한 비중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어느 시트콤은 한정판 게임을 사기 위해 줄 서 있는 캐릭터를 설명하며 “앞에서 기다리던 사람이 사라지길 기대하는 1인” 같은 인터넷 댓글 스타일의 글을 화면에 그대로 내보낸다. <무한도전> <무릎팍 도사> 같은 코미디 버라이어티 쇼의 경우에는 이러한 현상이 더욱 노골적이다. 단순한 화면 전환이나 게임 설명을 위한 텍스트뿐만 아니라 “형돈아 우리는 네가 더 부끄러” 같은 PD나 작가의 속말을 그대로 글자로 적어낸다. 이러한 표현은 만화를 통해 여러 화법과 시선이 겹쳐지는 효과에 이미 익숙해진 시청자들에게는 훌륭한 공감대를 만들어낸다. 조금 남용되는 감도 없지 않지만, 그 사용 자체에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이런 텍스트를 단순히 글자라는 추상물로 여기고 아무렇게나 내던지는 점에 대해서는 불만이 마구 솟아오른다. 영상과 소리라는 고전적인 구성물 이외에 추가로 덧붙이는 글자라는 요소는 아무래도 이질적이고 도드라진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 글자에 대해서도 충분한 디자인적 고려가 선행되어 최소한 눈에 불편하지 않게, 나아가 그 요소로 인해 화면이 더욱 때깔 나도록 해야 하는 거 아닐까?
케이블 TV를 통해 외국의 리얼리티 쇼나 토크 쇼 등을 접할 기회가 많아졌다. 나는 그 내용에도 탄복하지만, 같은 장면이라도 매혹적이고 자연스러운 디자인으로 만들어내는 그 표현법에 더욱 감탄하고는 한다. 여러 쇼에서 오프닝 화면, 장면을 전환하는 페이지, 영상 중간 중간 색연필로 낙서하는 듯한 효과 등의 표현을 따라가다 보면 나는 정말로 디자인 잘 된 잡지나 출판 만화를 읽어가는 듯한 희열을 느낀다. 여기에 톡톡 쏘는 소리의 요소까지 덧붙여지니 이것이야말로 멀티미디어 디자인의 정점이 아닐까 싶다. TV가 만화를 닮아가는 것은 나로서는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아무 만화나 적당히 따라 하지 말고, 정말 좋은 만화의 훌륭한 디자인 기법을 따라 하길 바란다. 원색의 강렬함, 장면 내 여러 구성 요소들의 효과적인 배치, 자연스러운 타이포그래피로 적절히 배치된 텍스트 요소 같은 것 말이다.
이명석대중문화 비평가 만화를 중심으로 TV, 인터넷, 영화 등 각종 시각 매체를 넓고 깊게 즐기기 위한 비평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고양이, 여행, 커피 등 여러 테마의 글쓰기와 새로운 형태의 책 만들기를 통해 스스로의 디자인 욕구를 발산해오기도 했다. <유쾌한 일본 만화 편력기> <여행자의 로망백서> <나의 빈칸 책> 등의 책을 썼다. |










이명석